날개 없는 선풍기의 개발
날개 없는 선풍기는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라는 이름으로 2009년 출시되었다. 에어 멀티플라이어는 주변의 공기를 끌어들여 유입되는 바람의 15배 정도까지 배출되는 바람을 증폭한 다는 의미이다. 다이슨은 ‘에어 블레이드’라는 손 건조기를 개발하였는데, 손 건조기의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원리를 선풍기에 적용해 보자는 제안에서 날개 없는 선풍기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런 혁신 제품이 등장하면 모조품 또한 우후죽순처럼 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혁신 제품을 보호하는 것은 바로 특허권이다. 혁신에 따른 특허 분쟁의 과정에, 다이슨 선풍기에 대한 특허 무효심판과 권리범위확인심판이 제기되었으나, 다이슨이 모두 승소하였다. 결국 다이슨은 강력한 특허권으로 혁신 제품을 지킬 수 있었다.
날개없는 선풍기 특허의 등록 과정
다이슨의 등록특허는 제10-1038000호이다. 더 많은 특허가 존재하겠지만, 다이슨의 핵심적인 특허이므로 이 특허를 중심으로 분쟁이 일어났다. 다이슨의 특허 등록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살펴보자.

다이슨은 날개 없는 선풍기에 관한 발명을 먼저 영국에 특허를 신청했다. 2009년 10월에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특허 신청이 이루어졌다. 영국 특허 신청을 기초로 국제특허 신청도 2009년 8월에 제출하였다. 이후 국제특허 절차에 따라 2011년 3월 한국에 진입하여 2개월여 만에 특허를 등록받았다. 소비자의 반응과 모조품의 등장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다이슨은 신속하게 한국 특허권을 확보하였다.
해외 특허가 필요한 이유
다이슨은 날개 없는 선풍기에 관한 발명을 영국에 먼저 특허를 신청했지만, 한국에서 특허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한국에 특허를 등록하였다. 이를 소위 ‘특허 독립의 원칙’이라고 한다. 각국의 특허는 서로 독립적으로 효력을 발생시키므로 나라마다 특허를 별도로 등록하여야 한다. 즉, 모든 국가에 통용되는 세계 특허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등록받았으나, 다른 사람이 동일한 기술을 사용하여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중국에서 판매하고 있다면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중국에는 특허권이 없으므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해외 특허 신 청 및 등록이 불가피하다.
특허출원이 필요한 해외 국가
특허 독립의 원칙을 고려하여 전 세계에 특허를 신청해야 할까? 이는 경영적 판단과 산업 분야에 따라 다르다. 의약품과 같이, 물질에 관한 특허 1건으로 사업을 보호하고 전 세계에 독점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특허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자 제품과 같이 관련 특허가 수없이 나오는 경우에는 전 세계에 특허를 신청하게 되면 그 비용조차도 기업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필요한 주요 국가에만 선택적으로 특허를 신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특허 신청이 필요한 주요 국가를 어떻게 결정할까? 당연히 제품의 주요 소비 시장에 해당되는 국가에 특허를 신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중국, 유럽, 일본, 인도 등이 중요한 소비 국가다. 그리고 특허 분쟁에 대비하여 특허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국가에 특허를 신청한다. 또한 경쟁 회사의 제품 생산 국가 또는 모조품이 생산되는 국가에 특허를 신청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한국 기업은 미국에 특허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으며, 중국에도 상당한 특허를 신청하고 있다. 그 외에 한국 기업에게 중요한 국가는 유럽, 일본, 인도 등이 있다.
해외특허출원과 우선권 주장
특허 독립의 원칙상, 해외 특허권을 취득하기 위하여 해외 특허를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 특허 신청은 각국의 언어와 제도의 차이로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국내 특허 신청과 해외 특허 신청의 중간 시점에 다른 사람이 먼저 특허를 신청하거나 발명을 공지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러한 불이익을 해소시키는 방안이 ‘파리조약에 의한 우선권 주장’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파리조약에 가입하였으며, 국내 특허 신청일로부터 1년 내에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해외 특허를 신청할 경우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해외 특허 신청은 파리조약에 의한 우선권 주장을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 특허 신청 후 1년 내에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미국에 특허를 신청한다.
우선권 주장 기한이 지난 경우
만일 한국에 특허를 신청한 후 1년이 지났는데, 해외에 특허를 신청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권 주장 기한인 1년이 지났으므로 해외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을까? 우선권 주장이란 한국 특허의 신청일과 해외 특허의 신청일 사이에 발생한 일과 상관없이 한국 특허의 신청일을 기준으로 해외 특허를 심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국 특허를 신청하고 제품 판매 등 공지 행위가 전혀 없었다면 해외 특허를 신청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우선권 주장을 할 수 없으므로 해외 특허의 신청일을 기준으로 해외 특허를 심사할 뿐이다. 실제 여러 이유로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 우선권 주장 기한이 1년이라는 점만 기억하고, 해외 특허를 진행하지 않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언제든지 해외 특허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특허의 신청이 1년 6개월 경과하여 ‘출원공개’ 되면 발명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므로, 해외 특허를 신청해서는 안 된다.
국제특허출원의 효과
다이슨은 영국 특허 신청을 기초로 우선권을 주장하면서 1년 내 국제특허 신청을 제출하였다. 국제특허 신청은 특허협력조약(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에 의한 특허 신청이다. 2013년 특 허협력조약에 가입한 국가는 148개국에 이른다. 특허협력조약은 파리조약을 발전시킨 방식이다. 파리조약에 의한 우선권 주장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에 특허 신청일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국의 언어와 제도에 맞게 국가마다 특허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 특허 신청은 148개국에 특허 신청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국제특허가 한번 신청 되면 각국에 특허를 신청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다이슨은 영국 특허 신청을 기초로 국제특허를 신청함으로써 세계 각국에 특허를 신청한 효과를 얻었다.
국제특허에 대한 오해
‘국제 특허’라는 용어가 사용됨으로써 가끔 오해를 빚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국제적으로 특허를 등록받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특허 ‘신청’만 있고 국제특허 ‘등록’은 없다. 그래서 세계 특허는 없다고 말한다. 국제특허 신청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특허 신청일을 확보하는 것이며, 심사 및 등록은 각국의 절차에 따라야 한다. 다이슨도 한국에서 특허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 지식재산처에 심사 및 등록 절차를 진행하였다.
국제 특허가 필요한 경우
국제특허 신청은 제한적으로 이용된다. 개별 국가를 바로 결정할 수 있다면, 국제특허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또한 대만은 국제 조약에 가입할 수 없으므로 국제특허를 신청하더라도 대만은 별도로 특허를 진행해야 한다. 국제특허는 화학 분야와 같이 물질 특허 1건으로 전 세계에 특허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 또는 추후 해외 국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 주로 이용된다. 예외적인 상황으로 우선권 기한이 촉박한데 번역 등 준비 시간이 부족한 경우, 한국 지식재산처에 한국어로 국제특허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심사 진행을 위해 필요한 심사청구
다이슨은 한국 지식재산처에 한글 번역문을 제출하는 동시에 심사를 청구하였다. 특허청에 특허를 신청하면 심사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다르다. 심사를 먼저 진행하고 등록시키는 나라도 있고, 심사 없이 특허를 등록시키는 나라도 있다. 한국,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는 심사 후 특허를 등록시키는 ‘심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심사주의를 채택하더라도 지식재산처에서 신청된 모든 특허를 심사하지 않는다. 각 특허 신청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심사 결과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심사를 선별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한국, 일본, 유럽, 중국은 심사청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심사청구제도란 특허청에 심사를 진행해줄 것을 일정 기간 내에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중국, 일본의 심사청구기간은 특허 신청일로부터 3년으로 제한된다. 미국은 심사청구제도가 없기에 특허가 신청되면 모두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청구 전략
이러한 제도의 차이는 기업의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동일한 발명에 대해 한국, 미국, 일본, 중국에 특허를 신청한 경우, 미국의 심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다른 국가의 특허에 대하여 심사 청구를 진행할 것인지 판단한다. 만일 미국의 특허 심사 결과, 선행 기술 때문에 특허를 받을 수 없다면 다른 국가의 특허 심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 다른 국가에서도 동일한 선행 기술에 의하여 거절될 것이며, 혹시라도 심사관이 간과하여 특허가 등록된다고 하더라도 추후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빠른 심사를 위한 우선심사
다이슨은 2011년 3월 17일에 심사를 청구하였지만, 이와는 별도로 2011년 3월 25일에 우선 심사를 신청했다. 심사를 청구하면 특허청은 심사를 청구한 순서에 따라 심사를 진행한다. 공평하고 합리적이지만 이러한 순서에만 따른다면 심사 순서를 기다리는 데 1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짧은 시간 내에 심사받기를 원한다면 심사 청구한 순서에 관계없이 먼저 심사해 달라고 신청해야 한다. 이것이 앞에서 설명한 ‘우선심사 제도’이다.
특허심사 하이웨이
특허청에 따르면 다이슨은 우선심사제도 중에서 ‘특허심사 하이웨이(Patent Prosecution Highway, PPH)’를 이용하였다. 특허심사 하이웨이란, 먼저 심사한 국가에서 특허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으면 다른 국가에서 이러한 결과를 참조하여 조기에 심사를 완료하는 제도를 말한다. 동일한 발명이 이미 영국에서 심사된 만큼 이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면 한국에서 특허 심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특허 절차 덕분에 다이슨은 한국에 진입한 지 20여 일 만에 특허 등록이 결정되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등록이 결정된 셈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호주 등에서도 동일한 절차를 밟아 신속하게 등록을 받았다.